(기고)‘헝그리 복서’와 30여년 만의 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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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통신=정홍철 기자)
30여 년 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실에 손님이 들이 닥쳤다. “형님, 제가 탄 이 트로피 좀 보세요” 고아원야학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던 내게, 애향원 총무는 “저 아이 때문에 걱정”이라며 속상해 했었다. 동네 아이들을 다 패고 다닌다는 거였다. 불러서 물어보니 애들이 고아라고 놀린다는 거였는데, 초등학교 6학년생 주먹이 어른 주먹만 했다. “야 인석아, 이런 멋진 주먹으로는 권투하면 잘 할 텐데 그까짓 못된 애들 때리는데 쓰지 마~” 무심히 던진 한마디였다. 학교 앞 불고기집에 데리고 가 마음껏 먹으라고 했는데, 몇 점 집어먹더니 못 먹겠단다. 소문대로 ‘헝그리복서’였다.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으니 잘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고기집 주인아주머니께 조심스럽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라면을 3개 끓여서 먹였다. 계란까지 넣은 라면국물에 밥을 두 공기 꾹꾹 말아먹더니 “모처럼 잘 먹었다”며 연실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메어와 나까지도 불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느덧 배가 불러지고 나자, “어떻게 권투를 하게 되었냐”는 내 물음에 대뜸 “형님이 하랬쟎아요”라고 대답했다. 그 해 겨울 방송을 보고 찾아온 어머니를 만났고, 호적에 가족이 생기자 고아라는 이유로 판정된 군 면제가 번복돼 군에 입대했다.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에 있다는 소식을 끝으로 나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대상황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리고 여러해 전에 수소문 끝에 동대문시장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그와 전화통화를 했었다. 그리곤 또 격랑의 세월이 흘러갔다. 며칠 전 WIBA세계여자복싱 홍서연 챔피언의 1차방어전이 열리는 제천체육관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인데도 예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고기를 제법 잘 먹는 그에게 고기를 연신 타지 않게 구워주며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어머님을 만나긴 했는데 당연히 아무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가를 잃고 화병에 1년 뒤에 세상을 뜨셔서 이미 안계셨다. 군에 가서도 적응이 잘 안되어서 무척 고생을 했단다. 제대 후에는 어머니와도 같이 살기 힘들 정도로 어색했고 게다가 그 자신은 정을 주고받는 일이 낯설고 서툴기만 했다. 결국 따로 살게 되었고, 다시 권투를 시작했단다. 선수로서는 이미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세상살이도 그랬지만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게 너무 어려웠다. 방황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누구하나 마음 놓고 의지할 사람 없는 ‘고아’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살았단다. “형님, 전화 받고 참 많이 망설이다가 왔어요” 지금은 살아가기가 너무 막막해 사람 만나는 걸 꺼리고 있다고 했다. 부인과는 헤어지고 10년째 혼자 살고 있다. 경기도의 한 도시에 권투도장을 내고 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커서 그런지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참 많이 힘들었어요” 연애할 때도 그랬고, 가정을 꾸리고서도 도시 나아지질 않았다. 잘 해주려고 한 말도 상처가 되어 박혔고 생각해서 한 일도 다 역효과만 났단다. 차라리 사람을 깊게 사귀지 않는 편이 안전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만나서 행복했을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다.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등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근규 충북 제천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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