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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의림지와 퇴제

제천의림지

by 정홍철 2013. 3. 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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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읍지》에

■ 退堤在縣北十里周三百八尺

• 퇴제는 현에서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둘레가 308척이다.


■ 義林池堤在縣北十里周五千八百五尺深不可測

• 의림지제는 현에서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둘레가 5,805척이며, 수심은 헤아릴 수 없다.

고 기록하고 있다.


두 기록을 볼때 현에서 북쪽으로 10리에 있다는 것은 인접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학고집》에, “못의 남쪽에 갑문의 설치는 돌로 쌓지 않아서 물이 흘러 그 아래 작은 연못에 받아서 절약하여 모아서 새는 것이 마땅하니 이름은 ‘선지(鐥池, 귀때 붙은 쇠그릇 형상)’이다. 선지의 서쪽 산기슭에 비알을 팠으며 위에 진섭헌(振屧軒, 신털이봉)이 있다.” 라고 하였다.


《연초재유고, 1745년》에, “선지는 임호(林湖)의 수통 밖에 있으니 오래 폐지되고 수리하지 않아서 전 현감 홍중우(洪重禹)가 준설하고 치수하였다.” 라고 하여 지금의 영호정 아래 있었던 퇴제(退堤)를 말한 것이다.


피재골[稷峙谷]과 용두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합수하여 제2의림지로 저수한 농업용수를 관개하는 모산평은 도시화로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에 평야의 원형은 살필 수 없다.


제2의림지 여수(餘水)는 솔밭공원의 관개수로(灌漑水路)를 통하여 의림지로 수로가 이어진다. 조선시대 제방에 설치한 수통에서 받은 대야지제(大也池堤)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동시에 그 동측에 퇴제(退堤)에 담수하여 넘치는 못물은 다시 남쪽으로 유등제에 저수하여 청전평과 후평 등지에 관개(灌漑)하는 거대한 몽리면적에는 가뭄의 피해가 없이 도작농업을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었다. 


퇴제와 청전동 등지에서 학교(鶴橋) 밑으로 흘러서 보통원수에 합류하여 사계(沙溪)로 흐르고, 화산동 갈치제(葛峙堤)와 남당(南塘, 현 대한통운 동편 테니스장 자리)의 주변에 크고 작은 산봉우리에서 흘러온 냇물을 저수하여 사계로 흐른다. 남당의 서측에 고차수(高遮藪)는 노송이 우거진 모습으로 천혜의 비경이다.


제천은 북고남저(北高南底)의 자연지세를 최대로 활용한 저수지는 의림지→대야지제→퇴제→유등제→갈치제→동방제 등이 연계하여 제언사가 상주하면서 계획적인 제언 관리를 철저하게 입안한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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