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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고장 제천 다시 ‘탁사 최병헌 선양사업’ 고개

제천뉴스

by 정홍철 2019. 10. 1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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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고장 제천 다시 탁사 최병헌 선양사업고개
한쪽에선 의병전쟁 vs 한쪽에선 회유 선유사활동

탁사 최병헌 선생의 애국운동과 선양 사업

 

충북 제천시내 곳곳 백주(白晝)에 불법현수막이 버젓이 대중 앞에 걸려 있다.

 

바로 탁사 최병헌 선생의 애국운동과 선양 사업강연회로 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제천문화원과 제천사랑실천운동본부가 후원한다.

 

한쪽에선 의병전쟁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선 회유에 나선 선유사활동을 한 인물을 선양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사업은 탁사가 교육·종교적으로 큰 인물이긴 하지만 선유사 활동기록에 발목이 잡혀 기념관 사업이 백지화 된 바 있다.

 

탁사 최병헌이 의병운동을 그만둘 것을 회유하는 선유사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264일 오후3시부터 열린 탁사 최병헌 토론회는 지금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음에도 선양을 운운하기엔 이르다.

 

이날 좌장을 맡은 이창식 교수는 선유사 활동 부분은 의병의 고장 제천의 이미지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면서 이 부분을 펙트로 확인해야 한다. 지우거나 덮어서는 안 된다. 가장 신경써서 이야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친일)이쪽 연구한 분들도 면밀히 검토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되어야 했지만 예비후보 조차 거론 안 됐다. 앞으로 이 부분은 전문가들과 함께 매듭을 지어야 할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자양영당 홍근원 장의는 선유사는 임금의 명을 받아 백성을 회유하는 임무 수행했다. 의병활동 저지를 목적으로 현지에 파견됐다. 그러나 탁사 최병헌은 저지보다는 회유쪽으로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총칼 들고 나가서 싸우는데 말리는 격이다. 제천시민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의심이다. 탁사의 뜻이 어떠했던지 지역정서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의병유족회 이관식 회원은 구한말 의병활동을 하신 습재 이소응 선생의 4대손이다라고 소개한 후 선유사 활동은 임금의 명을 받았지만 일본의 뜻이 많이 작용했다. 제천지역정서와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반대의견을 보탰다.

 

탁사기념사업회측 2명의 토론자가 참석하지 않은 것에 이창식 교수는 기념사업회측 관계자가 반론도 내고 해야 하는데 참석하지 않아 아쉽니다면서 용역사 차원에서 답변해 줄 것을 부탁했다.

 

객석토론을 신청한 제천문화원 이광진 조합장은 기념사업회에서 참석을 하지 않아서 의미가 모자라는 것 같다. 기념사업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과정 있다. 토론하신 분들도 일부 시민들의 그런 정서를 반영해서 말씀한 것 같다. 문화원의 전체 입장은 아니지만 문화원장 입장에서는 제천의 모든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재산으로 해서 관광사업으로 연계해서 제천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일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천출신이 역사적인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서 중요한 일을 했다면 지역 연고성을 주장해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게 좋지 않겠나.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왕명을 받고 충청도 선유사 활동한 것인데, 의병활동하지 말라고 한 의도와 사실진위가 어디까지인지 드러나야 한다. 상해 임시정부와도 접촉한 것을 보면 일제 앞잡이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객석토론을 신청한 자양영당 신항선 도유사는제천은 의병의 고장이다. 자양영당을 성역화 하면서 제천시민의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 라고 하는 것은 수호지심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의병의 자는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국난을 당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에 대해서 탁사가 선유사로 나왔다는 것은 왜놈들이 왕권을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명칭만 왕명이지 앞잡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용역사 ()건양기술공사건축사 조철민 이사는 연대기 책자료를 검토한 결과, 제천에서 이름이 큰 인물이 없기 때문에 기념관건립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했다. 선유사활동 부분은 찬반 논란이 많은 부분인데, 건립을 위주로 설계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유사는 실제적으로 일제의 명으로서 제천의 의병활동에 반한거 아닌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실제적인 의병운동 반대차원의 선유사 일보다는 민족 계몽운동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이창식 교수는 선양사업은 인간이기 때문에 흠이 있다. 탁사의 선유사 활동부분은 업적이 100이라면 1정도 임에는 틀림없다. 그전에 친일 부분에 대해 점검했다. 친일인명사전 후보 명단에도 없다. 탁사 선생을 대신에서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인물에 대해 소중한 인물에 대해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폭을 넓혀야 한다. 긍정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유사 부분에 대해)반드시 집중적으로 토론하고 연구하는 세미나는 따로 있어야 한다.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들이 토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객석토론에서 양화감리교회 김형국 목사는 개인입장에서는 동의하고 찬성하는 입장이다. 선유사 문화적 의의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부분은 충분히 검증된 후 토론과 정리가 필요하다면서 건립부지로 월림리가 선정된 배경, 숙소의 활용여부, 운영주체 등을 따졌다.

 

자양영당 신항선 도유사는 또 사업을 계속 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의병 얘기 또 하는데 의병이 임시정부로 해서 광복으로 건국까지 갔다. 의병을 하는 것은 국치. 당시 선유사를 좋은 편으로 끌고 가는데... 왕권이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을사조약 등 뭐든지 일제가 마음대로 한거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창식 교수는 그런 자리를 지역문화연구소 또는 내제문화, 기념사업회, 제천문화원이던 만들어야 한다. 정확하게 검증 안 되고 나 두면 오해의 오해를 낳는다. 나중에 계몽운동을 의병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병산영당 안광영 도유사는 제천이라는 곳이 의병 하나로 대내외적으로 부각돼 있다. 그런데 탁사 선생이 기독교를 위시해서 공적이 중대하다고 해서 기념관 논하고 있다. 사림으로서는 수용하기 엄청 힘들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던지 상생이 되어야 하는데 상충이 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부모처자를 버리고 전쟁을 하는데, 한쪽에서는 왕명이라고 해서 암암리에 저지를 하고 그 사람은 어디의 국민인가?”라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선비들이 나서서 전쟁을 하는데 다른 생각을 했다. 자양영당 의암 류인석 성역화 되어 있다. 탁사 기념관 해 놓으면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볼 때 우스운 일이다. 한쪽에서는 말리고 한쪽에서는 전쟁하고. 제천은 의병의 고장이다. 시기적으로 연구적으로 맞지 않다. 상충이다. 모든 일은 상생에 입각해서 해야 한다며 재차 상생을 강조했다.

 

마무리 발언에서 홍근원 장의는 말씀할 것 다 했다고 간결하게 정리했다.

 

의병유족회 이관식 회원은 방청석 말씀과 같다. 백가지 잘해도 한 가지 흠도 흠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창식 교수는 결론을 내는 자리는 아니지만, 앞으로 관계자들이 정리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 모아가는 자리이다라고 마무리하며 2시간의 토론회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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