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격고팔도열읍’ 류인석 의병장 격서

역사속으로

by 정홍철 2016. 10. 27. 12:04

본문

류인석 격고팔도열읍의암 류인석 의병장이 쓴 격고팔도열읍

격고팔도열읍

아! 우리 팔도 동포들은, 차마 망해 가는 이 나라를 내버려 두시렵니까.

제 할아비 제 아비가 5백 년 유민(遺民)이 아닌 바 아니거늘, 내 나라 내 집을 위해 어찌 한두 사람의 의사(義士)도 없단 말입니까.

참혹하고도 슬프구료, 운이라 할까 명이라 할까.

거룩한 우리 조정은 개국한 처음부터 선왕(先王)의 법을 준수하려, 온 천하가 다 소중화(小中華)라 일컫거니와, 민속은 당우(唐虞) 삼대(三代)에 견줄 만하고, 유술(儒術)은 정자(程子)·주자(朱子) 여러 어진 이를 스승 삼았기로, 비록 무식한 사람이라도 모두 예의를 숭상하여, 임금이 위급하게 되면, 반드시 쫓아가 구원할 생각을 가졌던 것이외다.

그래서 옛날 임진왜란에는 창의(倡義)한 선비가 한이 없었고, 병자호란에는 순절(殉節)한 신하가 많았으며, 저 중국은 왜놈의 천지가 되었지만, 우리나라만은 깨끗하였으니, 바다 밖의 조그마한 지역이지만 족히 싸인 음(陰) 속에 한 가닥 양(陽)의 구실을 하였던 것이외다.

아! 원통하외다. 뉘 알았으랴, 외국과 통상(通商)한다는 꾀가, 실로 망국의 근본이 될 것을.

문을 열고 도적을 받아들이어 소위 세신(世臣)이란 것들은 달갑게 왜적의 앞잡이〔虎倀〕노릇을 하는데,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루려는 이 선비들은 남의 노예가 되는 수치를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송(宋)나라를 어리석게 만드는 금(金)나라의 꾀는 너무도 망칙하고 노(魯)나라에 남아 있는 주(周)나라의 예는 보전하기 어렵게 되니, 이 때문에 미약한 시골 백성의 신분으로 한갓 나라를 근심하는 한탄만 간절할 따름이었는데, 마침내 갑오년 6월 20일 밤에 이르러, 우리 조선 삼천리강토가 없어진 셈입니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은 일발(一髮)의 위기에 부닥쳤으나 송(宋)나라 이약수(李若水)가 흠종(欽宗)을 껴안은 일을 실행한 자가 누구며, 목사(牧使)·현감(縣監)이 모두 육식(肉食)만 하는 자들이라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처럼 의병 모집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옛날 고구려가 하구려(下句麗)로 된 것도 오히려 수치라 이르는데, 하물며 지금 당당한 한 나라로서 소일본(小日本)이 된다면 얼마나 서러운 일이겠습니까.

아! 저 왜놈들의 소위 신의나 법리는 말할 것조차 없거니와, 오직 저 국적(國賊) 놈들의 정종(頂鍾) 모발(毛髮)이 뉘를 힘입어 살아왔습니까.

원통함을 어찌하리.

국모(國母)의 원수를 생각하면 이미 이를 갈았는데, 참혹한 일이 더욱 심하여 임금께서 또 머리를 깎으시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의관(衣冠)을 찢긴 나머지 또 이런 망극한 화를 만났으매, 천지가 번복되어 우리 고유의 이성을 보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부모에게 받은 몸을 금수로 만드니 무슨 일이며, 우리 부모에게 받은 머리털을 풀 베듯이 베어버리니 이 무슨 변고입니까.

요순(堯舜)·우탕(禹湯) 제왕의 전통이 오늘에 이르러 끊어졌고, 공맹(孔孟)·정주(程朱) 성현의 명맥을 다시 이어갈 사람이 없으니, 장안(長安)의 부로(父老)들은 한관(漢官)의 모습을 몹시 그리워하고, 신정(新亭)외 호걸들은 초수(楚囚)의 눈물만 떨어뜨립니다.

군신(君臣)·부자가 마땅히 성을 등지고 한번 싸워 볼 생각이 있는데, 천지 귀신은 어찌 밝은 데로 향하는 이치가 없으리오.

관중(管仲)이 아니면 우리는 정녕 오랑캐가 될 것이니, 요치(淖齒)를 베이는데 누가 과연 우단(右袒)을 할 것인가.

무릇 우리 각도 충의의 인사들은 모두가 임금의 배양(培養)을 받은 몸이니 환난을 회피하기란 죽음보다 더 괴로우며 멸망을 앉아서 기다릴진대 싸워 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땅은 비록 만분의 일 밖에 되지 않지만 사람은 백배의 기운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으매 더욱 신담(薪膽)의 생각이 간절하고, 때는 자못 위태하여 어육(魚肉)의 화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들어보지 못했소.

오랑캐로 변한 놈이 어떻게 세상에 설수 있겠습니까.

공으로 보나 사로 보나 살아날 가망이 만무하니, 화가 되건 복이 되건 ‘죽을사(死)’ 자 하나로 지표를 삼을 따름입니다.

말 피를 입에 바르고 함께 맹서하매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은 예측할 바 아니오, 의리를 판단해서 이 길을 취하매 경중과 대소가 여기서 구분되는 것이니, 대중의 마음이 다 쏠리는데 어찌 온갖 신령의 보호가 없겠는가.

나라 운수가 다시 열리어 장차 온 누리가 길이 맑아짐을 볼 것입니다.

어진 이는 당적할 자 없다는 말을 의심하지 마소서.

군사의 행동을 무엇 때문에 머뭇거립니까.

이에 감히 먼저 의병을 일으키고자 마침내 이 뜻을 세상에 포고하노니, 위로 공경(公卿)에서 아래로 서민에 까지, 어느 누가 애통하고 절박한 뜻이 없겠는가.

이야말로 위급존망의 계절이라, 각기 짚자리에 잠자고 창을 베개하며, 또한 끊는 물속이나 불 속이라도 뛰어 들어, 온 누리가 안정되게 하여, 일월이 다시 밝아지면 어찌 한 나라에 대한 공로만이겠습니까. 실로 만세에 말이 있을 것 입니다.

이와 같이 글월을 보내어 타일렀는데도, 혹시 영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곧 역적의 무리와 같이 보아 단연히 군사를 불러 먼저 토벌할 것이니, 각기 가슴속에 새기고, 서제(噬臍)의 뉘우침이 없게 하여, 부디 성의를 다하여 함께 대의를 펴기 바랍니다. 

을미 12월 아무날 충청도 제천(堤川) 의병장(義兵將) 류인석(柳麟錫)은 삼가 격서를 보냄.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