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의 여인 고읍지 & 막가파 왕자 창원군①
{편집자 주} 세종 때 익녕군은 간통한 남자하인의 불알을 깐 죄목으로 제천으로 유배되는데, 성종 때 창원군은 여자하인 고읍지를 살해 하고도 살아 남는다. 소설 등 각색은 바통을 이어 받아 누군가에 의해 이뤄질 수 있겠지만 우선 의 기록만을 정리해 연재한다. [역사실록] 성종 9년(1478) 엄동설한 1월 11일 돈의문 밖 모화관 인근에 사는 황산수(黃山守) 문(汶)이 두골이 상하고 깨어진 여자 시체가 버려져 있음을 성종에게 아뢴다 그는 “신의 집이 모화관(慕華館) 동쪽에 있는데 집 북쪽에 두골(頭骨)이 상하고 깨어진 여자 시체가 버려져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성종은 “속히 검시(檢屍)하여 추문(推問)하라”고 전교했다. 이 보고가 있은 후 이틀 후인 13일 성종은 심하게 훼손된 여자의 시체가 버려진 ..
역사속으로
2013. 3. 31. 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