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제천, 지도상에서 없어진 마을. <매켄지. 1907>
(전략) 충주나 원주(原州)와 같은 도시에서는 사실상 모든 부인과 아이들과 상류계급의 가족들이 피난하였다. 상점의 주인들은 피난을 가기 전에 점포의 문을 닫고 못을 박아 두었지만 일본군들은 이를 강제로 열고 물건을 약탈하였다. 제천이 폐허화된 것에 비하면 다른 도시의 피해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제천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만큼 완전하게 파괴되었다. 금년(1907) 늦은 여름까지만 해도 제천은 중요한 지방도시로서 인구가 이삼천 명에 이르렀으며,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득한 평야에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곳은 고관 대작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서 배스(Bath)나 첼츠넘(Cheltenham)과 같은 곳이었다. 대부분의 가옥은 으리으리했으며 그 중의 몇 채는 기와집이었는데 이는 이 고장이 부유..
역사속으로
2012. 6. 8. 09:38